[연재 소설] 조선으로 간 피부과 의사 ② 레이저 없이 흉터 치료하기
[연재 소설] 조선으로 간 피부과 의사 ② 레이저 없이 흉터 치료하기
  • 유인홍 편집장
  • 승인 2024.03.26 19: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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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유인홍, 신지연
이미지/ChatGPT

 

1장: 후궁의 신뢰와 중전의 질투

수백 년 전 조선의 새벽은 조용했다. 어둠을 더욱 짙었고 현재의 도시와는 사뭇 다른 기운이 피부과 의사 신지연의 몸을 감싸 돌았다. 그녀는 그 한가운데 서 있었고, 자신을 미래에서 고대 왕조의 심장부로 데려온 여정이 여전히 믿을 수 없었고 긴장감도 계속되었다. 서울의 스카이라인은 부드러운 기와 지붕과 깨어 있는 궁전의 부드러운 중얼거림으로 바뀌었다.

그녀를 이곳, 이 시간으로 데려온 남자는 멀리서 무표정으로 서 있는 여성에게 안내했다. 어둠 속에서 흔들리는 초롱불을 들고 서 있던 여성은 신지연이 올 것을 이미 알고 있었던 듯이 심드렁하게 맞이했다. 어느새 남자는 사라지고 중년의 여성을 따라 궁 안으로 들어갔다. 아무 얘기도 하지 않고 총총 걸음으로 앞서 가는 여성을 신지연이 잡아 섰다.

“대체 누구신가요? 어디로 가는 건가요?”

“조용히 하세요.”

속사이었지만 아주 빠르고 명료한 대답. 그리고 신지연을 얼마 전에 지어진 듯한 한옥 건물로 이끌었다. 이리저리 골목을 지나고 주변에 사람이 없는 걸 확인하며 중년 여성이 말했다.

“저는 궁궐에서 일하는 여관(女官), 최 상궁입니다. 후궁들을 관리하는 일을 맡고 있어요, 당신이 아주 용한 의관이라고 들었어요. 특히 얼굴에 난 피부병을 치료하는 데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들었죠. 물론 얘기만 들은 거라 아직 믿지는 못하겠소. 정말 치료를 잘 하는지 지켜보겠어요.”

그리고 한 켠에 조용히 앉아 있는 후궁으로 보이는 여성을 소개했다. 딱 봐도 얼굴에는 흉측한 흉터와 곰보자국들이 있었다. 이런 흉터들이 그녀를 더욱 슬픈 표정으로 만들고 있었다.

신지연은 그녀를 보자마자 수백 전에 궁궐로 시간 이동을 했다는 사실을 잊어버렸다. 피부과 의사라는 직업적인 소명은 시간과 장소를 뛰어넘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흉터는 2024년이었다면 매우 간단하게 치료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여기는 레이저도, 치료제도 없었다. 과학이 아닌 뭔가 신비로운 효험을 기대하는 시대. 아무리 백일 기도를 드리고 수많은 약초와 고약을 써도 호전되지 않았기 때문에, 신지연이 이곳으로 온 것일까.

신지연은 먼저 따뜻한 말로 후궁으로 보이는 여성을 위로 했다. 일종의 직업병.

“저는 신지연이라는 의사, 아닌 의관입니다. 제가 뭐라고 불러야 할까요?”

“화빈 윤씨입니다만...”

경계와 의심을 풀지 않는 대답.

“언제부터 증상이 있었나요?”

화빈 윤씨를 대신해 최상궁이 대답하였다.

“마마님께서는 넉 달 전 심한 고열이 있다가 얼굴에 고름이 잡히더니, 7일 뒤부터는 딱지가 얹게 되었고, 이후에 딱지가 떨어지면서 이렇게 흉한 자국이 남게 되었소. 의관의 말이 마마(천연두)라 하였고 의약청에서 약을 지어 얼굴의 과립은 모두 거두어졌으나, 이 마마 자국으로 근심이 커지시어 식음을 전폐하고 이렇게 누워만 계시다오.”

“폐하께서 더 이상 발걸음을 하지 않으시는 것도 다 이 때문이 아니겠나…”

화빈 윤씨는 작게 탄식하였다.

한 눈에 봐도 진단명은 천연두 흉터였다. 조선 숙종 때에도 숙종이 가장 아끼던 숙빈 최씨가 천연두로 13일 동안 발열과 안면에 증상이 있었고, 숙빈 최씨가 기력을 회복하자 치료하였던 의관 유상의 벼슬 품계를 높여주면서 크게 기뻐하였다지. 천연두가 조선시대에는 두려운 존재였다고 하니 이 때는 천연두를 앓고 살아난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마마 자국으로 상심한 후궁의 마음은 누가 위로해줄 수 있었을까? 지금 이 조선시대에서 이 흉터를 어떻게 치료할 수 있을까?

고민 끝에 여관인 최 상궁에게 물었다.

“고초액(일종의 진한 식초)을 구할 수 있습니까?

“고초액이라면, 관서(조선시대 수사기관; 의금부, 포청 등)에서 혈흔을 확인하는 데 사용하는 것이 아닙니까?”

“네, 물과 섞지 않은 강한 초액을 주시면 됩니다. 고초액과 더불어 침방서에서 바늘을 구해다 주시면 됩니다”

레이저도, 흉터를 채울 필러도, 주사치료제 그 무엇도 없는 상황. TCA peeling, CROSS가 머리속을 스쳤고, 강산 물질은 조선시대에도 구할 수 있으리라 생각이 들었다. 초(식초)는 조선시대에는 일반 평민 가정에서도 사용할 정도로 구하기 쉬웠고 특히나 고초액, 강한 식초라면 흉터에 회복을 도울 수 있을 터. 흉터 부위에는 고초액을 바늘을 이용해 조심스럽게 도포하였고, 동시에 식초를 묽게 희석하여 전체적인 peeling도 진행하였다. 다행스럽게도 화빈 윤씨의 피부는 희고 고왔기 때문에 색소 침착에 대한 걱정도 덜 수 있었다.

최상궁이 구한 고초액을 이용해 화빈 윤씨를 치료하는 과정은 이전까지 의관들이 하는 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약초를 다리거나 마음을 다스리는 치료가 아닌, 당시에서 구할 수 있는 원료를 이용한 직접적인 치료였다. 최상궁과 화빈 윤씨를 포함한 주변의 궁녀들은 그 치료 과정을 전혀 신뢰하지 않았다. 옆에서 도와주면서도 의심의 눈초리가 언제나 가득했다.

하지만 상궁과 궁녀들의 의심이 신뢰로 바뀌는 데까지 얼마 걸리지 않았다. 백약을 써도 낫지 않던 화빈 윤씨의 증상이 서서히 호전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고 한 달, 두 달이 지나자 화빈 윤씨에게 슬픔, 사실 현재로 따지면 우울이겠지만, 그런 부정적인 마음을 사라지게 할 정도로 증상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치료법은 성공적이었다. 새로 온 의관인 신지연 기술에 대한 소문은 빠르게 퍼져나갔고, 속삭임과 놀라움으로 후궁들이 머물던 자수궁(慈壽宮)의 분위기를 뒤흔들었습니다.

신지연은 화빈 윤씨의 피부 질환뿐 아니라 피부결 자체를 완전히 다른 사람의 것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지금으로 따지면 동안 피부, 당시로는 백옥 같은 피부이다. 그렇게 빛나는 피부를 가진 여성을 외면할 남성은 없다. 화빈 윤씨는 왕의 어여쁨을 받기 시작했고, 이 이야기는 궁녀들 사이에서 인터넷보다 빠르게 퍼져나갔다.

물론 이 일은 중전의 귀에도 들어갔다. 자신 대신 화빈 윤씨에게 마음을 두기 시작한 임금을 더이상 보고만 있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

중전의 밀려오는 질투의 폭풍이 닥치기 직전이라는 사실도 모른 채 신지연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돕는 만족감에 힘입어 치료에 전념했다. 다른 후궁들도 그녀에게 전적인 신뢰를 보내고 밤낮으로 찾아와 상담하고 치료를 받았다. 후궁들은 피부가 좋아져서, 신지연은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피부과 의사라는 보람에 쌓여, 짙은 먹구름이 궁전으로 다가오는 것을 미처 알지 못했다.

폭풍은 중전의 날카롭고 단호한 말로 시작되었다.

“요망한 의관을 당장 내 앞에 데려오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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